벚나무 동산

체홉의 <벚나무 동산> 사실 <벚꽃 동산>이라는 이름으로 훨씬더 유명하고, <벚꽃 동산>이라는 이름의 책이 집안 어딘가에 있을 것임이 분명하지만... 지만지에서 나온 <벚나무 동산>, 왠지 제목이 맘에 든다. 예전에 학부 수업에서 김승옥과 체홉과 또 누구더라... 어쨌든 어떤 작가까지 세 명을 가지고 레포트를 쓴 적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러프하고 순간적인 컨셉에 불과했고, 결과물도 별로였던 것 같은데. 체홉을 읽는, 김승옥을 읽는 때의 그 독자로서의 체험이 너무나 비슷해서 무턱대고 에세이처럼 논문을 썼었다. 둘의 소설을 읽으면 나는 매우 외로워진다. 이상하게도 몇 년 동안 외로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근데 이 희곡을 읽으면서 난 매우 외로웠고 오랜만의 감정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벚나무 동산>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지주라고는 해도, 실상은 가난한 라네프스카야 부인. 그녀의 어린 아들이 물에 빠져 죽자 그녀는 도망치듯 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파리의 생활에서 점점 에너지를 소진하고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딸, 그리고 벚나무 동산. 오랜만의 재회. 조상 대대로 내려온 벚나무 동산은 이미 담보로 잡혀있고, 오는 여름에는 경매에 붙여지게 되어 있다. 8월의 경매일이 다가오고... 벚나무 동산은 라네프스카야를 경애하던, 지금은 어엿한 신흥 상인이 된 로파힌의 소유가 된다. 과거 농노의 자식이었던 로파힌과 라네프스카야 둘다 눈물을 흘린다. 전혀 다른 의미의 눈물이겠지만. 라네프스카야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고 모두가 사라진 뒤의 텅 빈 방에, 혼자 남은 병든 늙은 하인 필스가 힘없이 소파에 드러눕는다. 역시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쓸쓸하다. 체홉 단편중에 <골짜기>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이것과 비슷한 플롯인 것 같다. 공간은 고정되어 있고 등장인물들만이 움직인다. 시간이 흐르긴 하지만 일대기라고 보기엔 포커스를 받고 있는 인물이 두드러지지 않는. 음. 그러니까 다다미컷과 비슷하달까. 프레임 고정, 피사체로서의 공간 고정. 사람이나 물건들의 움직임은 잡히지만, 사물의 중심을 다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히는 카메라워크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벚꽃 동산>의 연극이라도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