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석 가죽 판 같은 박용주의 손바닥이 김초향의 뺨을 두세 번 치자 그 자리에 푹 짚단처럼 쓰러져 버렸다.
"자식 굶었나. 맥없이 쓰러져. 미워서 때린 게 아니고 화가 치밀어 때렸다. 아프다면 사과하마. 너 좋아하는 냉면을 살 테다."
뻗어버린 김초향을 일으켜 세워 고려정으로 박용주는 휘파람을 불며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봉구, <그리운 이름따라ㅡ명동 20년> 중에서
시대나 시간 같은 추상적인 것까지 포함한 모든 사물에 대하여 향수를 느끼는 때가 있다. 프로이트는 아니지만, 왠지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지금 나에게 어떤 '결여'가 있는 것이다. 가족들과 좁은 거실에서 아무것도 아닌 얘길 하면서 그리움에 젖는다. 며칠째 거의 자동적이다. 몇년 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늙은 내가 되어서 '지금'을 그리워하고 있다. 위의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생각했다. 이 사람, 정말로 <명동>을 아끼고 있구나, 거의 제것처럼. 거의 현재가 아닌 것처럼. 아주 사적인 추억처럼 명동을 어루만지고 있다. 구체적인 인명과 지명과 상호명을 총동원하여 말이다.
#2
"잡초가 보구 싶으니 안내를 하십시오. 잡초는 희망의 묘석 틈에서도 자라난다고 '게을규'는 말했읍니다. 하물며 명동 폐허에 돋아난 잡초란 이방인인 나로서도 그저 지나칠 수가 없읍니다. 우리는 먼저 잡초에 대한 공부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저본의 1/3 분량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했지만,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한 것은 옛날의 정취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편집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대신 '게을규'가 '게오르규'임은 따로 주석에서 밝혀 주기도 해서 독자로서는 감동을 느꼈다.
#3
애수가 어리긴 했지만 작가의 간명한 문장이 가진 명랑함을 미덕으로 삼아 빠르게 읽어내려간 책.
과격한
솔직한
허물없는
대범한
투명하고 투박한
정이 있는 명동.
오늘은 이 명동을 추억처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