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철학하는 한 가지 방법

보통 우리가 <철학적>이라고 할 때 이것은 대개 인식론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여대거나, 그럼에도 이해한 뒤의 뿌듯함을 위해 책을 붙잡고 늘어지게 만드는 주제. 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확률에 관한 철학적 시론>이라고 하면,
나는 확률의 근원이라든지, 확률을 구하게 된 역사적 이유라든지, 확률을 통한 인생론 따위가 등장하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참 매력적인 제목이군 하는 동시에 참 쓸모없는 책이겠군 하는 마음이 있었다. 독전감讀前感이었다.
그러나 라플라스의 아주 간단하고 간명한, 하지만 전공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식이나 공식 대신 구구절절한 설명들 속에서 이 사람의 머릿속에 <철학적>이란 다분이 <설명적>이고 <우회적>이며 <쓸데없이 친절한> 성질을 나타낸 것임을 알았다.

물론 이러한 친절은 나 같은 비전공자에게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줄글을 따라가는 눈의 물리적 움직임으로 인한 착각(이 수학적 개념을 이해했다! 라고 하는)을 순수한 태도로 즐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