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지 책은 집에도 이미 몇 권 있지만, 꼭 리뷰를 하리라 결심하고 나니... 그리고 특정 출판사에서 일정 시간 일하게 되고 보니... 타사의 책 체제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저자만큼이나 바이오그래피가 다뤄진 역사 소개는 특히 신선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별똥별>과 차페크 얘기.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었을 때, 이것 참 굉장하디 굉장한, 엄청나게 엄청난, 재미지게 재밌는 책이군 싶었다. 모든 문학은 인류에 대한 탐구, 그 소산임이 확실하지만 인간보다도 <도롱뇽>에게 훨씬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이 소설에서 우연히도 휴머니즘의 객관화라는 전리를 취한 기분이랄까.
도롱뇽, 로보트, 뭐 그 비슷한 키워드와 비슷한 뉘앙스겠거니 했지만 <별똥별>은 그래도, 조금은 순문학에 가까웠다. 하지만 차페크의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자면(감히, 단 두권만 읽은 주제에!) <입체감>이 아닐까 싶다.
ROBOT이란 말을 처음 만든 위인답게... 역시 그의 소설은 3단 변신하지 않는가.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3차원적!이다.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 의식 불명의 남자. 그의 인생을 풀어가는 3명의 너무도 다른 사람들. 사고 전의 남자와 사고 당시의 남자, 사고 후의 남자는 전혀 다른 성질의 개체일 것이다. 그 한 명의 일대기만을 다뤘어도 그럭저럭 2차원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페크는 세 명의 관찰자를 세웠다. 작가의 대리인인 이들은 하나의 내러티브를 건축적으로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과학적일 뿐 아니라 예술적이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철학적이다. 그래서 독자 나부랭이로서 나는 거창하게도 인생의 행로, 라는 것에 대해서도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얼른 <호르두발>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