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내리는 비.
온종일 찌뿌린 하늘. 드디어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비.
준비한 우산이 소용없게 됐어도 만끽하는 잠깐의 기쁨.
너그러이 봐줄 헛소용.
바삭한 부침개 테두리나 치즈가 듬뿍 올려진 피자를
어두운 실내에서 짐승처럼 웅크리고 먹어치우기.
그와는 정반대로
밤부터 내린 비가 잠에서 깨어서까지 이어지고 있으면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다.
이 비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졌고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음습한 물기 속에서 식사도 하고 연애도 하고 사춘기도 보냈음을 문득 깨닫는 것이다.
201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