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제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압제자보다 약한 입장에 서게 마련이다.
ㅡ알렉산드르 솔제니찐, <수용소군도> 중에서
내가 왜 그렇게 바짝 쫄아 있었는지 알겠다.
더이상 수축할 수 없을 정도로(여기서 수축이란 '신축'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 쭈구리가 되었던 이유. 나는 압제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질 않다. 그건 뭐... 이상주의적인 낙관이라 해도 좋겠지만, 순전히 천성적인 어떤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압제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피압제자라는 건 어쨌거나 최약체(혹은 상대적 약체)를 마주해서는 압제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잠재적 압제자란 말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난 압제자가 된 적도, 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는 거다. 해서?
자, 이렇게 해서 ㅡ 당신은 <끌려간다>. 당신이 대낮에 체포되어 끌려갈 때에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될 수 없는 짧은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때 겁을 주는 설득에 의하여 슬그머니 끌려가건, 또 권총을 노출시킨 노골적인 방법으로 끌려가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과 똑같이 자멸할 운명에 처한 무고한 군중 사이를 헤치며 끌려갈 때면, 아무리 그들이라도 당신의 입을 틀어막지는 못한다. 그때 당신은 고함칠 가능성을 갖게 되며 또 반드시 <고함을 쳐야 한다>!
<나는 체포되어 간다! 변장한 악한이 사람을 잡아간다! 수백만에 대한 제재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외쳐 대야 하는 것이다.
ㅡ알렉산드르 솔제니찐, 같은 책